0. 자연스럽게 <설국열차> 생각이 났다. 일단 똑같이 소우주로서의 영화. 인물 하나하나가 사회의 어떤 요소들을 반영하고, 그것이 폐쇄적인 우주를 만들어내는 영화를 나는 소우주로서의 영화라 생각한다. <설국열차>와 <기생충>은 모두 '양극화'라는 소우주로서 작동하는 영화다. 그럼에도 <설국열차>는 허공에서 발이 떠 있게 느껴지는 탓에, 인물들 각각이 가짜처럼 느껴지지만... <기생충>은 인물 각각이 어느 동네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는 영화였다. 이런 건 진짜 하기 어려운 것이다. 걸작이다.
1.<설국열차> 역시 빈과 부, 혹은 양극화에 대한 이야기였고, 영화는 그것의 해결책으로 과거 운동권적인 혁명이 아니라, 시스템 밖에서 사고해야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이야기 자체는 혁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영화가 재미없게 느껴지는 지점 중 하나였다. '시스템 내부에서 혁명하려고 하지 말고 시스템 밖을 사고해야해!' 라고 말하기 위해서, 감독은 그냥 시스템 밖을 사고할 것을 주문한 것이 아니라 일단 시스템 내에서 혁명하는 과정의 무용함에 대해 보여주고 주제를 이야기하기 때문에... 과정이 별 상관없이 느껴졌던 것. 그래서 결국은 '이 기차 안의 사람들은 어디서 똥싸나?' 하는 생각에 이를만큼, 그 기체 내의 세계가 가짜처럼 여겨졌다)
2.그러니.. 자연스럽게 <설국열차>는 사람들 사이의 '연대'에 대해 다룬다. 하지만, <기생충>의 인물들은 '연대'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 기우네 가족은 박사장을 아는 순간, 자신의 가족이 박사장네에 완전히 기생하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된다. 시계로 재진 않았지만, 실제 4-50분 정도의 분량이 기우네 가족이 완전히 박 사장 내에 기생하는 과정으로 채워져있다. (이게 보통 대중 영화의 1막일텐데, 봉준호가 아닌 자가 1막을 그렇게 써간다면 투자 받긴 글렀을테다 ㅎㅎ ) 그 과정에서 이미 기생하는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 대한 연민 혹은 연대의식은 전혀 발휘되지 않는다. <설국열차>와 ('우리 식구'의 경계에 대해 탐구하던)<해무>를 거쳐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는 무엇이 바뀌었는가? "각자도생"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삭막해졌다는 생각을 감독은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3.그런 의미에서 '문광' 여사가 조선중앙TV 앵커를 흉내내는 장면이 재밌었다. 남편은 이에 대해 '역시 종북행위의 지존. 사랑해 여보'라고 반응한다. 과거 '식반봉'에 근거하여 평등 운동을 하던 운동권 부부 역시, 이제는 신흥 자본가에 기생하여 살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대중 조직 스킬로 악명이 높은 NL 답게, 문광이 '충숙'을 처음 봤을때, 문광은 충숙을 세포처럼 포섭할 수도 있었을테다. '우리 함께 자본가 벗겨먹자. 콜?' 하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왕년의 운동권에게도 이제 연대 의식 같은 것은 없어져버린 것이다. 각자도생을 위한 주인에 대한 봉건적 충성심만 남은 채... 이 얼마나 시의적절한 캐릭터 묘사인가.
4.또한.. 연대 의식의 상실은 기택의 칼빵에서도 드러난다. 기택이 박사장에게 칼침을 놓는 동기가 얼마나 시의적절하냔 말이다. 딸의 죽음에 대한 복수도, 죽은 문광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 때문도 아니다. 결국 '시발것 니가 뭔데 나를 무시해?' 버튼이 눌려버리고 만 것이다. 이 정서야 말로 K-정신이다. '각자도생'이라는 시대 정신이, 결국 생물학과 윤리학의 전쟁터에서 생물학의 손을 들어줘버리고 말았을 때 남는 것..!
5.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은 인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져버리지는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격이겠지만, 기우네 가족은 조금 먹고 살만해졌을 때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 대해 연민하기 시작한다. 엄마까지 박사장네에 들어오고 나서, 주인 흉내를 내는 시퀀스에서 처음으로 타인에 대한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각자도생은.. 마, 다 살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고 언제라도 좋아질 수 있다 믿고 있을 터이다.
6.하지만.. 우리가 조금의 관용과 여유를 보일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지는 않다. 기우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았다며, 수석(부를 상징하는)을 강가에 돌려놓고 돈을 많이 벌겠다고 한다. 그 날이 오면 아버지는 지하에서 올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물론, 의미없는 -혹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징을 버려두는 것 자체는 좋은 시작이다. 이제 어떤 허례 허식 없이 현실을 직시하겠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 집을 사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돈을 벌고 집을 사겠다는 태도도 좋다. 하지만... 그 숏 따라 어두침침해보이는 반지하방에서의 공상이라 그런지 고졸에 범죄 경력까지 생겨버린 기우가 인심을 만들 정도로 곳간을 채워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사실, 불가능해보인다.

+ <기생충> 보고 임상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하녀>의 세계를 모조리 가져와서 21세기 K-사회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 모두에 적용될만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봉준호와 정식 리메이크였지만 그냥 그저그랬던 임상수의 <하녀>. '모두다 ㅈ까!! ㅅㅂ 우린 다 망했어!!'와 '사실은 나는 내 안타고니스트처럼 되고 싶어'의 차이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