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2019. 10. 16. 15:41

스티븐 킹 on 글쓰기

 

"글쓰기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일해야 하는 종류의 직업이다. 사람들은 모두 정신 안에 어떤 망을 가지고 있는데, 망의 크기나 촘촘한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나의 망에는 걸린 것이 여러분의 망은 그냥 통과할 수도 있고, 여러분의 망을 통과한 것이 나의 망에는 걸릴 수도 있다. ...()... 사람은 또한 자신의 망에 걸린 침전물을 파헤쳐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의무가 있는데, 거기서 찾은 것이 한 개인을 가두는 일종의 한계가 된다." (<Night Shift>(황금가지) 의 서문 중에서)

 

 

스티븐 킹 on 공포

 

  "공포 소설을 읽으면서 그 내용을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흡혈귀나 늑대 인간, 운전사도 없이 저절로 달려 나가는 트럭을 믿는 사람은 없다. 우리가 정말 믿는 두려움은 도스토예프스키나 올비, 맥도널드가 보여 주는 종류의 두려움이다. 증오, 소외, 사랑받지 못한 채 늙어가는 것, 아직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험한 세상에 내던져지는 것. 매일매일의 실제 생활에서 우리는 희극이나 비극에 등장하는 가면을 쓰곤 한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속으로 인상을 찌푸리는 것이다. 그 두 가면이 만나는 지점 어딘가에 기차의 노선을 바꾸는 스위치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을 공포소설은 짚어낸다.

  공포 소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이 먹던 음식을 먹음으로써 그의 죄악까지 그대로 넘겨받는 연쇄 살인범 같은 존재다. 괴물이나 공포에 관한 이야기는 각종 공포증이 가득 담긴 채 느슨하게 닫힌 바구니와 같다. 작가가 지나갈 때, 사람들은 그가 상상으로 만들어낸 공포 중 하나를 그 바구니에서 꺼내고 그 자리에 자신들의 실제 공포를 대신 넣어 둔다. 적어도 얼마 동안은 그렇게 두게 된다.

  1950년대에는 거대한 벌레들을 다룬 영화들이 마구 쏟아졌다. <괴물들>, <종말의 시작>, <죽음의 사마귀> 등이 모두 그때 나온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 속에서, 크고 징그러운 변종 괴물들은 거의 예외 없이 뉴멕시코 주나 태평양의 산호섬에서 있었던 핵폭탄 실험의 결과로 나타난 것들이었다.

  모든 것을 종합해 볼 때, 거대한 벌레가 나오는 영화는 모두 하나의 부인할 수 없는 유형을 보이는데, 그것은 맨해튼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 열린 시대에 대한 나라 전체의 집단적 공포였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일련의 '십대' 공포 영화가 등장했는데, <십대 늑대 인간>을 시작으로 <외계에서 온 십대들>을 거쳐 아직 수염이 나기 전의 스티브 매퀸이 동기생들을 지키기 위해 푸딩 반죽 같은 변종 괴물에 맞서 싸우는 영화 <얼룩>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거의 모든 주간지에서 매주 청소년 탈선에 관한 기사를 써 대던 시기에, 십대 투사들이 나오는 영화는 아직 완전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던 십대 혁명에 대한 나라 전체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한 것이었다. 마이클 랜든이 고등학생 재킷을 입은 채로 늑대 인간으로 변하는 장면에서, 스크린 위의 환상과 딸아이가 만나고 다니는 웬 고물 차를 모는 놈팡이가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십대 당사자들이게는(당시 십대였던 나로서는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말이다),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스튜디오-1950년대 B급 공포 영화나 에로 영화를 주로 만들었던 미국의 영화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괴물들은 자신들보다 더 추한 괴물들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대상이었다. <나는 십대 프랑켄슈타인이었다>에 나오는 십대 피투성이 괴물에 비하면 얼굴에 난 여드름 몇 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십대 괴물 영화 붐은 또한 어른들로부터 부당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십대들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했다. 부모님은 '이해를 못 한다'는 것이다. 당시 영화들에는 일정한 공식이 있었는데(영화든 소설이든 공포물에는 나름대로 공식이 있다), 이 공식이 분명히 보여주는 것은 십대들 전체의 편집증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편집증은 부분적으로는 부모님 세대가 즐겨보는 잡지에서 부풀려 보도한 것이었다. 끔찍한 혹을 단 괴물이 엘름빌이라는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영화가 있었다. 아이들이 주로 연애를 하는 길에 비행접시가 떨어졌기 때문에, 마을의 십대들은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괴물이 먼저 트럭을 타고 가던 노인을 죽인다(이 노인 역은 절대 실패하지 않는 배우 엘리사 쿡 주니어가 맡았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아이들은 괴물이 정말 마을 주변을 돌아다닌다고 어른들을 설득하고 다닌다. 하지만 그들이 듣는 대답은 "귀가 시간 어긴 걸로 방에 가두어 버리기 전에 얼른 나가!" 였고, 엘름빌의 경찰서장은 괴물이 대로에 나타날 때까지 여기저기 쓰레기를 버리며 투덜대기만 했다. 결국 머리 회전이 빠른 한 소년이 괴물을 끝장내고는 자신만의 은신처로 가서 초콜릿 음료를 마시며 무슨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이것이 바로 특정한 유형의 영화들을 보며 느끼는 다양한 카타르시스이다. 대부분 열흘 안에 급히 만들어지는 저예산 영화치고 그리 나쁜 결과는 아니다. 이는 해당 영화의 작가나 프로듀서, 또는 감독들이 그런 일이 생기기를 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기 보다는 공포 이야기가 바로 의식과 무의식의 연결점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기 때문에, 이미지나 비유가 가장 자연스럽게, 그리고 가장 효과적으로 발생하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이다. <십대 늑대 인간>과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장치 오렌지>는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며, <십대 괴물>과 드 팔마의 영화 <캐리>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공포 소설은 대부분 우화적이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나 <1984>처럼 의도적인 우화가 사용될 때도 있고 그냥 우화로서만 그칠 때도 있다. 톨킨은 모르도르의 제왕은 환상의 옷을 걸친 히틀러가 아니라는 점을 수도 없이 강조했지만, 그러한 생각을 발전시킨 논문이나 평론은 수없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아마 밥 딜런이 노래했듯이, 칼과 포크를 들고 있으면 뭐라도 잘라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ibid)

Posted by 김탁구
모조2019. 7. 25. 12:56

보통은 PS3로 블루레이를 감상하는데,

요새 캡쳐할 일이 많아서 영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고민고민하다가...

블루레이 외장 odd로 두 가지를 고민했다.

 

1. 파이오니아 bdr-xs06

 

2. 그러다 결국 산 것은 로지텍의 물건.. 상품명은 이미지 보시고.. 

 

이 물건으로 하게 된 이유는 명확했다.

=USB 3.0 케이블도 주고 그것에 연결해서 쓸 수 있는 C type 젠더도 준다.

 

아이맥과 맥북에어 (c type 젠더 밖에 없는) 를 동시에 쓰는 나로서는 불가피한 선택.

그리고... 케이블이 본체에 수납되어서 가지고 다닐 때 좀 멀끔한거 같아서..

 

*  *  *

 

블루레이 돌리는 프로그램 역시 뭘 쓸지 걱정을 했다.

처음에는 무료로 배포되는 Leawo bluray player를 써봤다.

막상 돌아가면 잘 돌아가는데...

하나의 타이틀이 재생되기 까지 로딩 시간이 너무 길고, 반드시 한 번은 오류가 난다. 그 오류가 나고, 이젝트를 시키고 다시 삽입하고 로드를 해야 재생이되는 것.

그래서 그냥 하나 질렀다.

 

videosolo bluray player 라는 것.

 

가격은 한화로 약 4.5만 정도 했다.

로딩 시간은 빠른데 두 가지 단점이 있었다.

 

1.맥용 앱에서는 DVD는 재생이 안됨.

2.타이틀의 원래 인터랙티브 메뉴를 사용할 수 없음. 

=그러니까.. 인터스텔라 블레를 넣으면 이딴 식으로 봐야한다.

근데 일단 적응을 하니.. 콘텐츠 자체로는 접근이 안되는 콘텐츠는 없어, 대충 눈치 껏 뭐가 뭔지 알게되니 좀 편해졌다. (세뇌)

 

*  *  *

 

캡쳐빌런이 되어가는 나.

 

 

앞으로 레퍼런스 정리하기가 많이 편하리라 생각한다.

Posted by 김탁구
모조2019. 7. 17. 14:36

함소원 씨가 인스타그램에 사과하는 것까지 보니.. 일단 남한 사회 한정으로 하여, '우리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도덕성에 대해 재판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가?'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그 사람들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진짜 궁금증의 차원에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1.나이차가 많은 커플 / 2.대마초한 연예인 / 3.낙태 / 4.연예인의 성매매 / 5.수간 등의 문제에 사람들의 분노, '저 새끼들은 도덕적이지 않아'하는 분노가 어마어마한 것 같다(그냥 일반적이었으면 별로 안궁금했을 듯). 물론 수간이야 서로 합의한 것이 아니니까 조금 다른 문제일 수도 있지만(그러나 나는 양꼬치엔 칭따오를 하는 입장에서.. 양이랑 수간을 한 목동을 100퍼센트 떳떳하게 '잔인한 놈 죽어라!!!' 하지는 못하겠다.), 문제를 동물권이 아니라 인간들 사이의 문제로 한정 시키면.. 이 모든 것들은 굳이 나나 그들에게 어떤 물리적이고 구체적이 폐를 끼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뭐 감정을 불쾌하게 함으로써, 나의 뇌세포를 파괴하고 복구시키는데 비용을 발생시켰다고까지 말하면 할말은 없으나 ㅎㅎ 그럼 존재자체가 나에게 폭력이면 죽일건가?ㅎㅎ)

심지어 이해 당사자들 입장에서 놓고보면 이타적이기까지 한 행동이다. 이해 당사자들은 해당 행위를 통해 금전이든, 쾌락이든 +의 측면에서 작용을 했으니 말이다. 통상 우리가 '무엇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이냐'하고 생각해보면, 그게 역지사지고 나아가 공감이고 그런다고 했을때... '그 사람이 그런 행위를 통해 행복하구나'를 생각해보면, 나랑 달라서 생기는 뭔지 모르게 불편함을 넘어서는 저 어마어마한 분노가 어떻게 발생되는 건지 모르겠음.

Posted by 김탁구